완벽한 피해자

🔖 자동차 사고가 났는지 확인하기 위해 감수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방화가 있었는지 알기 위해 감수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피해자가 살해당했는지 판단하기 위해 감수성을 가질 필요는 없다. 피해 여부를 눈으로 확인할 수 있으면 범죄가 성립하는지를 판단하기 위해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정을 고려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성폭력 사건에서 성인지 감수성을 요구하는 이유는 ‘성폭력 범죄가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이라는 의사결정의 자유를 침해한 것’이기 때문이다. 의사결정의 자유가 침해되었는지는 ‘피해자가 심리적으로 혹은 물리적으로 자기 의사를 자유롭게 밝힐 수 있는 상황이었는지’에 대한 판단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와 가해자 관계의 본질, 사회적 지위나 직장 내 권력 차이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판단할 수밖에 없다. (…) 피해자가 처한 구체적이고 특별한 사정을 정당한 이유 없이 함부로 배척하지 말라는 것이 성인지 감수성이다.

다시 강조하지만 성인지 감수성은 피해자 말을 무조건 믿어주라는 것이 전혀 아니다. 수사관이 피해자 말만 믿고 추가 수사 없이 성폭력 사건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해 버리면 어떻게 되겠는가. 빨리 기소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이 제대로 수사하여 증거를 확보한 후 기소하는 것이다. 피해자 진술이 맞는지 최대한 적극 수사해서 가능한 모든 증거를 확보해 주어야 한다. 전체 맥락을 확인하고 그 맥락 속에서 확보할 수 있는 증거들이 추려지는 것이다. 성폭력 사건은 특히 초동 수사가 중요하다. 성인지 감수성은 어떤 면에서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수사하여 추가 정황증거들을 확보하도록 하는 동력이 된다. 그렇게 확보한 증거가 피해자 진술과 얼마나 들어맞는지가 진술 신빙성 판단의 토대가 된다.

🔖 ‘피해자라면 이러이러해야 한다’라는 ‘피해자다움’은 단언컨대 허상이다. 피해를 입은 후 가해자인 상사가 집들이한다고 직원들 초대하면 같이 갈 수 있다. 그 자리에서 동료들이 웃기는 농담을 하면 웃고 깔깔대기도 한다. 사무실에 출근해서 가해자에게 멀쩡한 척 배꼽 인사를 하며 근무할 수 있다. ‘목구멍이 포도청’은 아니어도 성폭력 피해 입었다고 일할 권리까지 포기해야 하는 것은 아니니까.(…) 성폭력 피해를 입었지만 친한 친구들 만나면 잠시나마 즐겁다. 그래서 SNS에 친구들과 놀아서 행복하다는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다. 피해는 피해인 것이고, 그 이후 삶은 피해자의 성향, 기질, 환경에 따라 각양각색으로 이어진다.

🔖 “판사님 감사합니다. 제 이야기를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이 사건 소송에서 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아직 판결이 안 나왔는데도 제가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은, 제 이야기, 그러니까 제가 어떤 일을 겪었는지, 그게 얼마나 제게 고통스러운 일이었는지, 제가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지를 판사님이 다 들어주셨고, 또한 법정에 가해자를 대신해서 나와 있는 가해자의 부인 역시 이 이야기를 다 들었기 때문에 저는 제가 이겼다고 생각합니다.”

🔖 성폭력이 발생했을 때 사람들은 “왜 저항하지 않았냐?”고 추궁합니다. (…)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성폭력은 발생할 수 없다고 쉽게 말합니다. 죽기 살기로 저항하면 강간에 성공하기는 어려울 수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저항을 억압하기 위한 가해자의 추가 폭력으로 정말 피해자가 죽기도 합니다. 더러 그러다 가해자가 사망하기도 합니다. (…) 성적 자기결정권을 지키기 위해 몸과 생명까지 위험한 상황에 처하도록 할 이유는 없습니다. 피할 수 없는 상황이거나 누군가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다면 차라리 피해자가 성폭력의 순간에 저항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당하지 않기 위해 저항한 대가가 너무 가혹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가혹한 피해는 피해자 혼자 감당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 수많은 피해자들이 어렵사리 용기 내어 가해자를 고소한 이후 벌어지는 상황을 보고 자책하곤 합니다. 그러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가해자의 잘못을 말하고 제대로 처벌해 달라는 것은 당신의 권리입니다. 그의 잘못된 행위를 당신이 계속 감내해야 할 의무는 없습니다. 가해자가 그 일로 처벌을 받고, 직장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가해자의 잘못에 따른 결과일 뿐 당신 때문이 아닙니다. 잘못된 행위도 그의 것이고, 그것에 대한 결과도 오롯하게 그의 것입니다. 당신이 목소리 낸 이후 발생하는 일들에 대해 스스로 자책하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당신은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당신이 할 수 있는 마땅한 일들을 했을 뿐입니다. 자책은 가해자의 몫이어야 합니다. 당신이 할 일은 용기 있는 결정을 한 당신 안의 그녀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